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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US AND PEGORETTI: A PASSION FOR STEEL

POSTED BY BIKE MAKES ME HAPPY | 2021-12-30


이 글은 펠로톤 매거진에 올라온 콜럼버스와 페고레티의 이야기입니다. 글, 이미지: James Startt



핸드메이드 자전거의 세계에서, 하이 퀄리티의 프레임과 예술을 결합시킨 이탈리아 프레임 빌더, 다리오 페고레티의 아우라는 독보적입니다. 1990년대 초, 사이클링 시장이 카본 자전거에 빠져들 때도 페고레티는 스틸을 고집했습니다. 매우 독특한 그만의 페인팅과 가능한 한 최고의 품질의 스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스틸 튜빙이 부흥하기 훨씬 전부터 페고레티는 진정한 원조라고 할 수 있죠.

2018년, 페고레티는 6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산도 인지도도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죠. 페고레티의 오랜 친구이자 현재 페고레티의 공동 CEO인 크리스티나는 다리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바로 떠났다고 기억합니다. 안장 회사 브룩스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한 크리스티나는 역사적인 영국 브랜드를 시장에 다시 자리 잡는데 핵심 역할을 했었습니다. 다리오가 세상을 뜬 후, 피에트로의 부탁으로 페고레티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죠. 창립자가 떠난 브랜드를 살아남게 하기 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공동 CEO인 피에트로는 공방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는 막막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그런 부분을 잘 알기에, 그녀에게 페고레티의 사무실을 맡아달라고 했죠. 우리가 함께하면 페고레티는 살아있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주문을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페고레티의 상징적인 스틸 프레임은 여전히 미래가 있고, 그들의 비전을 세상에 더 보여주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공급업체들은 창립자가 떠났기 때문에 얼마 못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3년 전 다리오가 사망했을 때 많은 공급업체들이 바로 공급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피에트로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남아있었죠. "주요 파트너 중 하나는 콜럼버스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수장, 안토니오 콜롬보였고, 그가 아니었다면 페고레티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페고레티 보테가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주문은 많이 들어왔는데 선반은 텅텅 비어있었고 많은 공급업체들이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안토니오는 50-60개의 튜브 세트를 바로 보내주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콜럼버스가 거기에 있어줬어요."



안토니오 콜롬보에겐 이 결정은 쉬웠습니다. "피에트로와 크리스티나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소울을 갖고 있기에 전적으로 믿었어. 콜럼버스는 사이클링의 소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야."


콜롬보에게 페고레티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이고, 그런 소중한 친구를 기리기 위해 전통을 유지하는데 전념했습니다.


"페고레티와 나는 음악, 예술, 우리나라가 이해하기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펑키했지. 나보다 훨씬 더 펑키했어. 기본적으로 난 펑키 해지고 싶어. 하지만 다리오는 펑키 해지고 싶어 하지 않았어."

 안토니오 콜롬보는 말합니다.

"다리오는 내가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이야. 다리오, 카스텔리, 그리고 리차드 삭스 이렇게 셋에게 나는 빚을 졌어. 다리오는 '진짜'였고, 내가 빠져있는 게 '진짜'야. 다리오와 함께라면 자전거와 예술의 자유가 정말로 존재해. 다리오의 취향과 스타일은 정말 독특했어. 바이크 아트를 만들었지. 그의 작업장이 무대라면 그는 연기자이자 배우였어."


페고레티는 마크 로스코나 장 미셸 바스키아 같은 현대 예술의 거장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교한 마감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스틸의 한계를 깨부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피에트로는 다리오와 함께 밀라노의 콜럼버스 공장에서 안토니오, 에밀바노 몬토리오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항상 새로운 튜브 모양과 다양한 튜빙의 두께를 연구하면서 말이죠.



"콜럼버스와의 협력의 결실 중 한 예를 들자면 우리의 새로운 체인 스테이를 들 수 있어요. 31.7mm로 시작해서 요즘 사이즈의 휠을 위한 클리어런스를 만들기 위해 구부러지는 부분이 특별하죠. 스테인리스 스틸는 구부리기 쉬워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관계들로 쌓은 아카이브가 있어야 하죠. 다리오와 에밀바노에서 시작되어서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죠."


많은 이들이 페고레티가 세상을 뜬 후,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을 낮게 평가했지만, 페고레티가 떠난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산량은 여전히 높습니다. 크리스티나는 말합니다. "우리는 다리오가 떠났을 때, 연간 300개의 프레임을 생산하고 있었고 올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이를 맞출 거예요. 가장 인기 많은 모델은 XCr 스테인리스 모델에 독보적인 Ciavete 페인팅을 입힌 거예요."



크리스티나는 말합니다.

"XCr은 가장 인기 있는 튜브셋이고 실제로 시장성이 있는 제품이에요. 우리는 티타늄 수준의 최고급 스틸 자전거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런 자전거를 찾는 분들이 선택받는 게 XCr 튜빙이죠. 동남아처럼 습기가 많고 스테인리스 스틸이 적합한 곳에 많이 판매됩니다. 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분야의 선두주자로 명성을 알렸기에 XCr 튜브를 선택하는 건 당연하죠. 유지관리가 쉽고 성능이 뛰어납니다."



피에트로는 페고레티가 떠나기 전까지 그와 함께 수년간 일했으며 보테가(The Bottega)로 알려진 베로나의 작업실에서 페고레티의 정신을 매일 살아있게 하는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다리오의 호기심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보테가의 중심에 위치한 라운지에 앉아 피에트로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마스터라고 부르고 페고레티가 자리를 잡았을 때도, 다리오는 항상 호기심 가득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죠. 저에겐 그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페고레티의 미래는 매일매일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어요. 전 영감을 얻기 위해 매일 자전거 넘어를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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