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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E MAKES ME HAPPY

아이오와의 시골길에서 포틀랜드까지: Ira Ryan의 이야기

POSTED BY BIKE MAKES ME HAPPY | 2022-01-08


이 글은 펠로톤 매거진에 올라온 이야기입니다. 글: Tim Schamber 이미지: Ira Ryan, Breadwinner Cycles

 

 포틀랜드, 오리건에는 훌륭한 스틸 프레임을 만드는 '브래드위너 사이클'과 영원히 구를 것 같은 바퀴를 만드는 '슈가 휠 웍스'가 있죠. 브래드위너와 슈가 휠 웍스는 영감이 풍부한 환경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기쁨을 공유하며 함께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커스텀 메이드 제작 과정은 넥스트 레벨이라고 할 수 있죠. Tony Pereira와 함께 브래드위너 사이클을 만든 Ira Ryan과 마주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Ira,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보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세요.


 처음엔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시골에 살아서 이리저리 탐험하고 다니려고 탔어요. 특히 어린 시절에 자전거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건 모험심, 운동신경, 자긍심을 더 키워줍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샵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스틸 프레임이 주류였던 시절이죠. Ten Speed Drive Imports(80-90년대 유명했던 자전거 샵)에서 보낸 카탈로그를 보고 토마지니를 사던 시절이에요. 뭔가 고장 나면 부품 회사에 연락해서 워런티 받거나 새 부품을 주문하기보다는 직접 뜯어보고 고치던 시대였어요. 그 시대에 자전거업에 종사하면서 손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사이클링에 대한 감사함도 느껴요. 자전거에 관한 거라면 다 좋아하던 시절이었죠.


 아이오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레이스도 많이 나가고 RAGBRAI도 많이 참가했어요. 어드벤처 라이딩이 평범한 라이딩이었죠. 제가 살던 곳에는 그래블밖에 없어서 어드벤처라든지 그래블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았었어요. 그때는 똑같은 포장도로를 세 번 타거나 어디든 갈 수 있는 무한한 그래블을 타는 거였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스쿨버스를 이기려고 마구 달리던 그런 경험들이 자전거에 대한 저의 바탕이 되는 거죠.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레이스도 많이 안 나가고 지냈어요. 3-4년 정도는 자전거랑 살짝 멀어져 지냈죠. 2000년에 오레건으로 이사를 하면서부터 자전거 메신저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포틀랜드로 이사하면서는 '바이크 시티 USA'에 취직하면서 포틀랜드에 고마움을 느꼈죠. 돈을 벌기 위해 자전거 샵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바이크 메신저가 딱이었어요. 어쩌면 프레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죠. 그때, 메케닉적인 매력과 자전거를 고치는 것에 관한 관심들이 모아졌어요.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적인 요소들도 함께 맞물려 갔어요. 저만의 취향이 있었죠. 어떤 자전거가 멋있어 보이는지 아닌지 같은 취향도 확실했죠.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든다면 진짜 멋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바로 프레임 빌더로의 출발점이었어요.


 ▶저도 미케닉이지만 프레임 빌딩을 한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손으로 고치고 만지고 하는 걸 좋아했나요?


 네, 완전요. 레고에 엄청 푹 빠져있었고, 물건은 맨날 다 뜯어봤죠. 새 장난감이 생기면 바로 분해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다시 조립하곤 했어요. 농장에서 자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하려면 말 그대로 만들거나 고쳐야 하거든요. 다양한 재료가 있던 공간과 제가 자라온 환경은 튜브를 반으로 자르고 다른 거에 붙이고 하는 그런 것들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프레임 빌딩 하는 게 궁금했던 건가요 아니면 뭔가 문제점을 고치려고 했던 건가요? 


 실용적으로 만드려고 했어요. 처음으로 토치를 들고 스틸에 불을 댄 건 제가 타던 설리 크로스체크에 케이지 보스를 달기 위해서에요. 샌프란시스코에서 포틀랜드까지 가는 메신저 대회에 나갈 때 가방을 더 달기 위해서였어요. 그냥 진짜 가방 더 달려고 시작했죠. 저는 바이크 레이서가 되는 것 또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더 가볍고 잘 다룰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더 가볍고, 빠르고, 효과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매케니컬적인 욕망이었죠. 


▶용접은 예술이고 과학이며 굉장히 광범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임 빌딩하고 용접하는 걸 누구한테 배운 건가요? 아니면 장비만 빌려서 시작한 건가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던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바이크 메신저 할 때, 그 당시 바닐라 사이클을 만든 Sasha를 만났어요. 저는 바이크 메신저로 들어가고 그는 나가는 상황이었죠. 우린 친구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프레임 빌딩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어떤 느낌인지 보려고 했어요. 사샤한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죠. 그때 내가 아는 유일한 프레임 빌더였어요. 그는 돈을 좀 주면 장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고 프레임도 같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죠. 


 진지하게 토치를 든 첫 번째 순간인 거 같아요. 그때 딱 이 길이 내 길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이 일을 할 줄은 기대도 안 했었는데 말이죠. 그 당시에는 "그래, 뭐 어떻게 되나 해보자" 였어요. 사샤랑 같이 2005년에 만들었던 첫 자전거는 벽에 걸려있어요. 콜럼버스 튜빙으로 만들었죠. 그 자전거를 조립해서 페인팅도 안 한 채로 제1회 Tran Iowa 대회에 참가했어요. 기본적으로 로드 프레임에 캔티 레버 브레이크, 낮은 비비쉘, 살짝 긴 체인 스테이로 만들었고 여전히 공격적인 프레임이었죠. 크로스 바이크랑 비슷하지만 BB가 낮아서 도로와 그래블에서 핸들링이 좀 더 수월하죠. 이 프레임은 B-Road의 시초가 된 모델이고 그래블 바이크들의 선구자이기도 하죠. 


 두 번째 프레임은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부품이랑 러그 몇 개를 집 지하실에 가져와서 엄청나게 기초적인 걸 만들었죠. 아주 기본적인 거죠. 합판으로 지그 만드는 법, 모든 튜빙을 올바른 위치에 배치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법, 그 합판을 러그에서 충분히 거리를 두고 설치해서 토치로 태우지 않는 법 같은 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농장에서 하는 거랑 진짜 많이 닮아있어요. 블로우 토치고 있고 파이프도 있고 합판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게 가능할까요?


▶러그, 튜브, 토치, 용접 용품 같은 건 다 어디서 구하셨나요?

 

 몇몇 개는 사샤가 안 쓴 걸 샀어요. 이 세계에 한번 들어오면 계속 다른 문들이 있죠. 계속해서 네트워크가 연결돼요. 토니 [Tony Pereira는 Pereira Cycles을 하고 있었고 Ira와 함께 브래드위너 사이클을 만들었습니다.]는 프레임 만드는 걸 인터넷으로 독학해서 시작했어요.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케니컬해요. 기계적인 재능은 엄청나게 뛰어납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요. 전 신시내티 외곽에 사는 Brian Kelly를 찾아갔어요. 오하이오, 파르마에 있는 Joe Brigheli도 제가 초창기에 만들 수 있도록 튜빙을 공급해 준 분이죠. Bruce Gordon, Richard Sachs, JP Weigel 같은 분들이 있어요. 러그와 튜브를 공급해 주고 판매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커뮤니티에요.


 Henry James라는 회사는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규모가 컸어요. 캘리포니아 자체에 프레임 빌딩 생태계가 있죠. Curtis Inglis, Jeremy Sycip, 블랙캣의 Todd, 폴 컴포넌트 등등 다양하죠. 프레임 빌더로 이루어진 West Coast 커뮤니티가 있는데 스트로베리 바이시클의 Andy Newlands도 있어요. 그는 포틀랜드 프레임 빌더계의 조상 같은 분이죠. 프레임 빌딩을 취미로 시작했던 쿨한 할아버지죠. 사샤도 빌더계의 새 바람을 불어온 사람이죠. 



▶프레임을 한 번에 하나씩 만드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걸 생업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제 자신과 제 삶의 기준은 낮았었어요. 하지만 좀 더 원해도 된다는 걸 배웠고, 제 기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냥 고개 숙이고 계속 일했어요! 더 힘들게 말고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게 되기까지 45년이 걸렸어요. 처음 5년은 순수한 열정을 바탕으로 지냈죠. 사이클로 크로스, 로드, 산악자전거 레이스로 가득 찬 경쟁 세계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어요. 계속해서 불을 지피고 밀고 나가게 했죠. 내가 만든 자전거가 점점 더 나아진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에요. 저는 아직도 제가 만드는 모든 자전거가 조금 더 부드럽고 빨라야 한다는 그 과정에 깊이 매료되어 있어요. 진화라는 개념과 예술적인 과정이 저를 계속 흥분시키죠.


▶어떻게 스틸 바이크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더 나아지고, 더 빨라지고, 더 효율적으로 될까요? 


 벽에 걸린 두 자전거를 봐요. 토니의 두 번째 자전거랑 제 첫 번째 자전거에요. 솔직히 기술적인 면이나 프레임 빌딩의 과정은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1,000대 넘게 빌딩을 하면서 더 나아지고 더 발전하고 깊이 있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장인 정신의 수준도 더 빨라지고 더 높아졌죠. 더 많은 제작과 생산이 바탕이 된다고 생각해요. 산업디자인의 마법도 더해지고, 뭐든 반복해서 하면 나아지죠. 또한 금속공업이 많이 발전을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커스텀 바이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주류 브랜드처럼 생산용 자전거를 만들지 않는다는 거죠. 자전거들이 다 달라요. 옆 사람의 자전거와 다르죠. 사람한테 맞춰서 제작하니까요. 인심, 팔 길이, 키, 몸무게, 신발 등 정확한 신체 치수를 가진 사람이 두 명 있을 순 있어도, 그들이 이 자전거를 어떻게 타고 싶은지에 대한 배경과 역사, 아이디어는 다릅니다. 특정한 목적이 있는 라이더와 그 사람에게 맞는 자전거를 만드는 관계적인 면이 너무 좋아요. 종종 프레임 빌딩 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전거를 사람과 어떻게 매칭하느냐, 당신에게 맞는 자전거와 함께 일 때 시너지를 발휘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제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에요.  


▶언제부터 사람들이 당신을 프레임 빌더로 알아봐 줬나요?  


 처음에는 바이크 메신저 친구들, 레이스 커뮤니티 친구들이 제 프레임에 관심을 가졌죠. 처음엔 "재료비로 자전거 만들어줄게"라고 했어요. 처음 만드는 10대는 돈을 벌 수 없죠. 연습하고, 리듬을 배우고, 과정을 깨우치고,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과정이죠. 포틀랜드에서 커스텀 프레임 빌더의 붐이 없었다면 브래드위너도 없었을 거예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곳에 있던 거죠. 서핑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면 파도랑 조건이 딱 맞은 거죠.  


 사샤가 포틀랜드에서 일어난 그 파도를 빨리 탔어요. 그 후로 포틀랜드에서만 약 35명의 프레임 빌더가 있었어요. 다 유지가 됐어요. 디자이너로서 다가가거나 산업공학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어서 재밌었어요. 모두가 다 다른 걸 시도하고 있었고 그걸 둘러싼 멋진 커뮤니티도 있었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 명단이 길어졌고, 빌더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죠. 저도 충분히 오래 참았던 것 같아요. 아마 충분히 충전되진 않을 거예요. 레이싱 커뮤니티는 저에겐 큰 부분이어서, 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을 후원하기 시작했어요. 우린 제가 만든 자전거로 사이클로 크로스 대회를 10년 동안 나갔죠.



▶어떻게 토니와 함께 하게 되었나요?  

 

 전 포틀랜드에 있었고 토니는 유타에서 여기로 2005년도에 이사 왔어요. 그가 자전거 몇 대 만들더니 바로 커뮤니티에 나타났던 거 같아요. 그때 우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어요. 협력한 적이 없죠.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고, 우리는 그 커뮤니티에 있었지만 겹치는 부분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008, 2009년에 라파 콘티넨털이 시작됐어요. 멋진 프로젝트였죠. 저와 토니는 각자 프레임 빌더이자 라이더로 참여하게 되었고, 우리만 우리가 만든 자전거를 탄 사람이었어요. 라이딩, 빌더, 브랜딩을 다 포함한 좋은 경험이자 재밌는 프로젝트였어요. 그 후로 Tony와 저는 각자의 브랜드를 계속했지만, 어느 순간 연간 25대의 프레임만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게 포틀랜드에서 프레임 빌더가 연간 만들 수 있는 최고점이었던 거 같아요. 일 년 반 동안 빌더들이 오더를 못 받았어요. 사람들은 그냥 믿었어요. "나도 프레임 빌더가 될 거야!"  

 그 후 라파가 우리(Tony와 Ira)에게 협업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일하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거였어요. 우리는 여기저기서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했는데 라파와 콘티넨털 프로젝트가 진짜였어요. 25대의 프레임을 만들었고 바로 싹 다 팔렸죠. 대성공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슷한 점을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샵 운영이나 성격적인 면에서도 상호보완적인 스타일이었어요. 

 

 얼마 후에 Shinola를 위해 6개의 프로토타입 작업을 했어요. 그때 바로 우리가 브래드위너를 창업했죠. 재밌는 점은 우리는 브랜드나 회사를 차리려는 의도보다는, 우리가 함께 일한다는 걸 각자의 브랜드와 분리시키려고 만든 거였어요. 2021년, 라파와 시놀라 프로젝트 다음에, 리프레쉬하고, 리브랜딩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우리 각자의 브랜드보다 더 큰 규모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하면 연간 25대 이상의 프레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이 또한 우리가 각자 사업을 운영하면서 겪은 많은 실수로부터 배운 기회였죠.



▶그렇게 해서 브래드위너가 탄생했군요. 브래드위너 이름의 유래는 뭔가요?

 

 우리가 회사를 차리고 싶었는데 이름을 못 정했었어요. 우리 둘 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몇몇 이름들이 있긴 한데 눈에 확 띄는 건 없었죠. 어느 날 밤, 불안해서 자다가 깼어요. "월세랑 공과금 다 어떻게 내지?" 전형적인 소상공인의 걱정이죠. 그렇게 해서 Breadwinner(뜻: 밥벌이)가 나온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재밌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가 단지 돈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많았어요.

  

 다들 각자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회사를 설립해서 8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성공적이었고, 헛소리하던 사람들은 누워서 침 뱉기 한 거죠. 브래드위너는 좋은 이름이고,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미래를 향한 원동력이 되었어요. 


 브래드위너(Breadwinner)에서 'Bread'는 접근하기 쉽고 흔한 걸 의미해요. 원래 자전거 라인업에 총 6개의 모델이 있었는데 3개는 퍼포먼스 지향형(로드, 사이클로 크로스, 마운틴 레이스)이고 3개는 출퇴근 또는 데일리용이었어요. 투어링이나 마실용 자전거이죠. 데일리용 자전거의 목적은 모두가 매일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건데 이게 바로 Bread를 상징한다고 봐요. 그리고 'Winner'는 레이싱 요소들과 관련 있어요. 로드, 사이클로 크로스, 마운틴 레이싱 바이크 같은 모델이죠. 가볍고 빠르며, 요즘 시대에 맞는 자전거요. 오래되고 무거운 스틸 자전거가 스틸이라고 연관 짓는 그런 자전거 말고요. 로고에서 'W'는 모든 걸 하나로 모아줘요. Bread는 Ira Ryan에서 쓴 글씨체이고, 'Winner'에서 'inner' 부분은 Tony Pereira에서 쓴 글씨체에요. 두 브랜드가 어우러진 탄탄하게 엮인 이야기죠. 



▶다목적으로 타는 라이딩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브래드위너도 그런 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었나요?

  

 그렇죠. 더 넓은 클리어런스와 다재다능함이죠. 대부분 여전히 가볍고 민첩하고 다루기 쉬운 자전거를 원하긴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십 년 동안 오래오래 지속될 자전거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다양한 타이어 크기나 전반적인 사용 목적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을 하고 제작합니다. 옛날 마운틴 바이크가 부활하면서 사람들이 드롭 바를 다는 것도 재밌는 현상이에요. John Tomac (1985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한 미국 프로 사이클 선수. BMX 레이싱, CX, 로드, TT, 다운힐 레이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은 그런 걸 하고 있었죠. 사이클에도 유행은 돌고 도는 게 재밌어요. 

 

▶그래블 자전거에 서스펜션 단 거 어떻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하드테일을 좋아해서 그게 좀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전거 경험이 적은 사람한테는 서스펜션 달린 자전거 태워서 다운힐 타게 하면 진짜 재밌을 거예요.


▶재밌는 사실


 Tony와 Ira 둘 다 모터사이클 광팬이다. Tony는 도로 쪽이고 Ira는 좀 더 어드벤처 쪽이다. Ira는 종종 산으로 그래블을 타러 가곤 한다. Ira는 차는 가려져 있어서 바로바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가 없지만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은 비교적 비슷하고 생각한다. 특히 오래된 1994 BMW 같은 모터사이클은 항상 손길이 필요하다. Ira는 손이 많이 갈 걸 알면서도 그걸 샀는데 프론트에 맞춰서 리어 서스펜션을 교체했다. 서스펜션이 길어지면 센터 스탠드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센터 스탠드도 늘렸다. 그리고 여행 가방을 더 달 수 있도록 받침대도 더 만들어서 달았다. 하지만 Ira와 Tony 둘 다 이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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